2011년 7월 6일 수요일

살바도르 달리


화가 달리는 한 시절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독창성과 상상력은 그림을 통해 이 세상을 다시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가 1월 23일 여든 다섯 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피카소처럼 살아서 최고의 그림 값을 받았던 그는 세상을 잘 살았다. 생활의 유복함을 따져본다면, 그는 고흐의 반대편에 있었다고 할까?

그의 시신은 자신의 미술관인 피게라스 극장 미술관에 안치되었다. 달리는 자신이 태아였을 때를 기억한다고 큰소리친다. 풍부한 색감의 언어로 자궁 속의 세상을 묘사한다. 그런데 그런 태도가 역겨운 게 아니라, 달리라서 인지 초현실적인 상상력의 문장으로 읽힌다. 그의 자서전에 나타난 이기적이고 교만한 태도는 그가 천재여서 읽힌다. 그의 그림을 보지 않았더라면, 뭐 이런 미친 인간이 있나, 싶어 책을 내던졌을 것이다. 달리는 자신의 호적 신고를 하던 날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모든 교회의 종들을 울릴지어다! 허리를 구부리고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이여, 지중해의 북풍에 뒤틀린 올리브나무처럼 굽은 허리를 바로 세울지어다! 그리고 경건한 명상의 자세로 못박힌 손바닥에 뺨을 기댈지어다. 보라 살바도르 달리가 태어났도다.” 그리고 이런 글도 있다. “불행하도다. 그대들 모두여!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둘지어다! 내가 죽는 날은 사정이 다를 것이니!” 화가로서 달리는 잘 훈련된 지성과 놀라운 독창성, 기괴하고 파격적인 옷차림 등으로 유명하다. 자서전을 비롯한 책들도 또한 그의 그림처럼 놀라운 작품이었다. 그래 달리여, 당신은 천재이다. 내 인정한다. 잘 가라, 달리여. 부디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다시 돌아간 오늘을 슬프지 않게 하라. 당신의 영혼은 이미 그림 그 자체가 되었으니까.

작업실 안 그의 작품 앞에서(1951년)


“사실 나는 일생 동안 ‘정상성’이라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몹시 어려웠다. 내가 접하는 인간들,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정상적인 그 무엇이 내게는 혼란스러웠다. 내 생각에는 생길 수도 있는 일들이 절대로 생기지 않는 것도 의문이었다. 나는 인간이 언제나 가장 엄격한 순응주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인간 존재가 개인화되지 않는 정도가 너무나 심한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은행에 간 달리는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직원이 수표를 먹어버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금을 가져오기 전에는 창구의 직원에게 수표를 주지 않으려고 한다. 옆에 있던 부인 갈라가 달리를 설득했다. 직원이 수표를 먹지 않을 것이며, 먹는다고 해도 현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달리는 그제서야 직원에게 수표를 내민다. 그는 그런 일을 나중에 글로 쓰기도 했다.

그는 정상인이 아닌 장애인이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현실 부적응 장애는 예술가로서는 축복받은 일이기도 했다. 고전적인 예인들은 연주와 노래를 위해 일부러 눈과 귀를 멀게도 했다. 하지만 달리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장애를 자랑했다. 그는 완벽하게 일반인들과는 다른 천재임을 태아적부터 인식했다.

달리는 초현실주의 화가이다. 그는 앙드레 부르통과의 불화로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제명당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초현실주의 자체이니까 아무도 나를 쫓아내지 못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말이다. 그의 초현실주의는 자신이 이미 천재로 태어났다는 자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도무지 현실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누가 뭐래도 초현실적일 수밖에.


달리는 1904년 5월 11일 스페인 카탈루냐 동북부의 소도시 피게라스에서 태어났다. 달리의 이름 살바도르는 죽은 형의 이름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달리는 고집불통에다 안하무인이었다. 그는 금기시된 것들에 대한 도전으로 유년시절을 보낸다. 스탕달은 이탈리아의 한 왕녀가 더운 여름 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이렇게 탄식했다고 그의 일기에 썼다. “이 맛있는 걸 먹는 게 금지된 죄라면 얼마나 더 감미로울까!” 달리는 이 말을 자서전 초반에 유년시절을 이야기하면서 인용해 놓았다. 그의 의도는 분명하다. 그는 감미로운 세상을 위해, 금기를 향해 스페인 투우사처럼 돌진한다. 6살 때의 꿈은 요리사, 7살 때는 나폴레옹이 되기를 꿈꾸었던 달리는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이라는 대 참사 속에서도 달리 방식대로 살아나갔다. 그의 독창성은 그의 유년기 태동된, 트리스탕 라라를 필두로 한 다다이즘 운동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즉 그의 탄생과 함께 자연스럽게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도 같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17세가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깊은 상처를 안은 채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인류 역사뿐 아니라 인간의 삶에도 어떤 기운이 한데 모이는 시기가 있다. 위대한 사람이 한 그룹을 이룰 때도 있다. 이 시절에 달리는 다른 천재들을 만나고 사랑하게 된다. 학창시절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낸 시인 로르카와 영화감독 부뉴엘을 만났다. 로르카는 이기주의의 화신인 달리가 천재라고 인정하는 스페인의 시인이었다. 훗날 스페인 내전의 희생양으로 로르카가 어처구니없이 그라나다에서 처형당하자 달리는 그 때의 심경을 일기에 이렇게 썼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들과 심지어는 프랑코를 추종하는 파시스트들까지도 로르카의 죽음을 이용하여 수치스러운 선전선동을 일삼았다. 오늘날 로르카를 보라! 어떻게 되었나? 그는 정치적 영웅이 되어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 살바도르 달리, 한 때 그의 절친한 지기였던 나는 이제 신과 역사 앞에서 이렇게 선언하는 바이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그는 백 퍼센트 순수한 시인이었으며 내가 만났던 사람 중 가장 완벽하게 비정치적인 사람이었음을 맹세한다’ 라고 말이다. 그는 단지, 개인적인 타인이 결코 범해서는 안 될 인간의 권리를 박탈당한 시대의 가련한 희생양이었다.”

20대 초반 마드리드 왕립미술학교의 학생 시절, 성모 마리아의 고딕 조각을 보고 ‘눈으로 보는’ 그대로 정확하게 그리라는 교수의 과제에 광고지에서 본 저울을 그려낸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자기 자신이 세기의 천재라고 확신하고 있는 달리는 고딕 조각의 성모 마리아를 저울로 그렸고, 그 그림을 보고 아연실색하고 있는 교수에게 “선생님께서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 고딕 성모 상을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울을 보았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것은 매우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달리는 아버지의 돈을 펑펑 쓰면서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보고, 그리고, 조작했다. 그는 미술아카데미에서의 파행적인 행동으로 정학처분, 반정부 활동 혐의로 감옥생활도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지내다가 결국 퇴학을 당하게 된다. 미술사 과목의 답안 제출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서전에 ‘심사위원보다 내가 더 완벽하게 답안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제출을 거부했다’고 써놓았다.

달리에게 파리는 고향 다음으로 각별한 장소이다. 20세기 초 파리는 세계 예술가들의 둥지이자, 무덤이기도 했다. 그는 처음 파리에 가서 피카소를 만난다. 스페인 출신 두 거장의 만남이었다. 이미 대가인 피카소와 한참 혈기방장한 달리는 서로를 알아보지만, 서로 다른 세계관으로 평행선을 그으면서 살게 된다. 피카소 외에도 파리에서 만난 유명 인사들과 친숙하게 지냈다. 그 중에는 디자이너코코 샤넬, 막스 에른스트, 르네 마그리트, 폴 엘뤼아르, 앙드레 부르통 등과 같은 초현실주의 그룹들은 그의 활화산과 같이 타오르는 예술가로서의 삶에 기름을 부어주었다.

우리가 매우 익숙하게 알고 있는 그의 작품 <기억의 연속성>은 흐늘거리는 시계의 이미지로 매우 강력하게 남아 있다. 그 그림은 달리가 두통에 시달려 친구들과 같이 극장에 가기로 한 약속 장소에 갈라만 보내고 집에 혼자 남아 우연히 그린 것이다.


<기억의 고집 The Persistence of Memory>(1931년)

당시 작업 중이던 풍경화에 그려 넣을 오브제가 떠오르지 않아 불을 끄고 작업실을 나가려는 순간, 두 개의 흐늘거리는 시계가 ‘보였다.’ 그 중 하나는 올리브 나무 가지에 척하니 걸쳐져 있었다. 이 작품을 순식간에 완성한 뒤 극장에서 돌아온 갈라에게 공개했다. 눈을 감게 하고 그림 앞에 앉게 한 뒤 하나, 둘, 셋을 세고는 눈을 뜨게 했다. 그림을 본 갈라는 자신이 어떤 공연을 보고 왔는지 완전히 잊을 정도로 감탄했다. 그림이 그녀의 조금 전 기억을 모두 앗아간 것이다. 이 즈음 달리는 파리뿐 아니라 미국과 런던에서도 인정받는 세계적인 화가가 되고 있었다. 그의 재능은 영화, 퍼포먼스, 강연, 저술은 물론 뉴욕의 백화점 매장 전시 등을 통하여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나타난다. 그는 자서전을 1941년 7월 30일에 탈고한다. 그의 36년의 인생을 정리한 것이다. 그날 그는 알몸으로 있었다고 쓴다.

달리가 일생동안 사랑한 아내 갈라, 아이와 함께 한 휴가의 한 때(1951년)


그의 화려한 인생에는 그에 걸맞게 화려한 인물들(프로이드, 피카소, 엘뤼아르, 로르카, 천재적인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등장한다. 그의 화폭에는 이러한 인간들의 오브제가 몽땅 녹아 들어가 흐늘거리고 있다. 마치 난로 옆에 놓인 치즈처럼 달리 옆에 가면 흐늘거리면서 오브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 유일한 단 한 명의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는 갈라다. 단테에게 베아트리체가 있었다면, 달리에게는 갈라가 있었다. 멀리서 사랑을 바라보기만 하던 단테와 다르게, 달리는 당장에 갈라와 같이 산다. 갈라는 달리의 열쇠이자, 하늘이자, 땅이었다.

둘이 만났을 때 이미 그녀는 시인 폴 엘뤼아르의 부인이었고, 10년 연상의 여인이었다. 하지만 둘은 바로 사랑에 빠지고 동거에 들어간다(둘은 만난 지 수십 년 후 엘뤼아르가 사망하자, 교회에서 인정하는 부부가 되었다). 갈라는 달리라는 남자를 만나 그야말로 허공에 붕붕 떠다니는 천재를 지상의 천재로 만드는데 온 인생을 바친다. 갈라를 만나기 전의 달리와 그녀를 만난 후의 달리는 달랐다. 달리의 사랑은 유아적이고 맹목적이었다. 갈라가 병원에 입원하자 그녀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의사의 가운에 매달려 울부짖어 초현실주의 그룹 전체를 놀라게 했다. 갈라가 병상에서 일어나자 달리는 이런 생각을 했다. “결국 내가 당신을 죽일 수도 있겠군!”

어느 날, 달리는 독일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시인 에드워드 제임스와 함께 자신이 존경하는 프로이드를 방문하러 갔다. 달리는 편집증에 관해 발표한 자신의 글을 노대가에게 봐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프로이드는 무심하게 대했다. 달리가 물고 늘어지자 프로이드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완벽한 스페인 사람의 원형은 내 처음 봤소. 이 광적인 집요함이라니요!”

그는 초현실주의 화가이지만, 어느 순간 그것마저도 넘어서 버렸다. 초현실을 넘어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곳에는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가 무너진다. 달리는 말한다. ‘초현실주의자로서 나의 성공은 내가 초현실주의를 현실에 융합시키지 않는 한 아무 가치가 없을 것이다. 나의 상상력은 고전주의로 돌아가야만 했다. 완성해야 할 작품이 하나 남아 있었고, 그 작품을 완성하려면 내 여생을 다 바쳐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품고 있는 독자를 위해 달리는 이렇게 말했다. “광기 아니면 삶! 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늙어 죽을 때까지 생생히 살아 있을 나와 광인의 차이는 내가 광인이 아니라는 점이라고.”


뉴욕에서 전시 중인 작품 앞에서 코믹한 포즈를 취한 달리(1976년)

달리를 남겨두고 89세를 일기로 갈라가 세상을 떠난다. 달리는 갈라를, 그녀에게 선물한 푸볼 성에 안치시키고 매우 불안한 만년을 보내게 된다. 파킨슨병과 자살 기도, 침실 화재로 인한 수술을 받으면서 힘든 노년을 보낸 그는 결국 폐렴과 심장병 합병증으로 응급실을 오가다 84세에 갈라의 곁으로 돌아갔다. 달리는 죽음의 순간에 지구를 작은 공으로 만들어 발로 뻥 차버리지 않았을까? 먼 우주로 날아가는 작은 공이 된 지구는 달리라는 인간의 광기 어린 눈동자일 수도 있으리라.

<살바도르 달리 자서전>(살바도르 달리 지음, 이마고)
어느 괴짜 천재의 기발하고도 상상력 넘치는 인생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달리는 자신의 자서전을 갈라에게 바친다. 번역자는 ‘달리는 정말 달랐다’라고 써놓았다. 그는 다른 사람이었다. 자서전을 읽으면서 나는 글쟁이로서 분발해야겠다는 상념에 시달렸다. 자서전은 그의 그림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달리를, 그의 그림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문학 작품의 반열에 올라가야 할 이 자서전을 먼저 읽어야 한다.


<달리, 나는 천재다!>(살바로르 달리 지음, 다빈치)
달리의 일기장이다. 글과 더불어 그림이 잘 조화된, 즉 편집이 탁월한 책이다. 자서전에서 읽을 수 없었던 그의 후반생을 볼 수 있다. 먼저 소개한 책과는 자매처럼 나란히 두어야 한다. 달리는 매우 지성적인 화가이다. 그가 자신을 천재, 천재 하는데,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다. 필립 힐스먼과 작업한 사진 <달리의 콧수염>에 나온 달리의 모습은 그 자신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사진처럼 이 일기장을 읽는 일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원재훈 / 시인, 소설가
글을 쓴 원재훈 1988년 시 '공룡시대'로 등단했으며 <낙타의 사랑>,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라하네>등의 시집과 <만남, 은어와 함께 보낸 하루>, <모닝커피>등의 소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나무들은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 등의 산문집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집필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는 작가이다.

발행일 2009.01.23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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