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초현실주의 화가이다. 그는 앙드레 부르통과의 불화로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제명당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초현실주의 자체이니까 아무도 나를 쫓아내지 못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말이다. 그의 초현실주의는 자신이 이미 천재로 태어났다는 자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도무지 현실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누가 뭐래도 초현실적일 수밖에. 달리는 1904년 5월 11일 스페인 카탈루냐 동북부의 소도시 피게라스에서 태어났다. 달리의 이름 살바도르는 죽은 형의 이름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달리는 고집불통에다 안하무인이었다. 그는 금기시된 것들에 대한 도전으로 유년시절을 보낸다. 스탕달은 이탈리아의 한 왕녀가 더운 여름 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이렇게 탄식했다고 그의 일기에 썼다. “이 맛있는 걸 먹는 게 금지된 죄라면 얼마나 더 감미로울까!” 달리는 이 말을 자서전 초반에 유년시절을 이야기하면서 인용해 놓았다. 그의 의도는 분명하다. 그는 감미로운 세상을 위해, 금기를 향해 스페인 투우사처럼 돌진한다. 6살 때의 꿈은 요리사, 7살 때는 나폴레옹이 되기를 꿈꾸었던 달리는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이라는 대 참사 속에서도 달리 방식대로 살아나갔다. 그의 독창성은 그의 유년기 태동된, 트리스탕 라라를 필두로 한 다다이즘 운동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즉 그의 탄생과 함께 자연스럽게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도 같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17세가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깊은 상처를 안은 채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인류 역사뿐 아니라 인간의 삶에도 어떤 기운이 한데 모이는 시기가 있다. 위대한 사람이 한 그룹을 이룰 때도 있다. 이 시절에 달리는 다른 천재들을 만나고 사랑하게 된다. 학창시절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낸 시인 로르카와 영화감독 부뉴엘을 만났다. 로르카는 이기주의의 화신인 달리가 천재라고 인정하는 스페인의 시인이었다. 훗날 스페인 내전의 희생양으로 로르카가 어처구니없이 그라나다에서 처형당하자 달리는 그 때의 심경을 일기에 이렇게 썼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들과 심지어는 프랑코를 추종하는 파시스트들까지도 로르카의 죽음을 이용하여 수치스러운 선전선동을 일삼았다. 오늘날 로르카를 보라! 어떻게 되었나? 그는 정치적 영웅이 되어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 살바도르 달리, 한 때 그의 절친한 지기였던 나는 이제 신과 역사 앞에서 이렇게 선언하는 바이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그는 백 퍼센트 순수한 시인이었으며 내가 만났던 사람 중 가장 완벽하게 비정치적인 사람이었음을 맹세한다’ 라고 말이다. 그는 단지, 개인적인 타인이 결코 범해서는 안 될 인간의 권리를 박탈당한 시대의 가련한 희생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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